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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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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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1950년대 전후 미국의 풍요로운 무질 환경 속에서 보수화된 기성질서에 반할해 저항적인 문화와 기행을 추구했던 젊은 세대, 개인적인 문화 탐구를 추구하며 극단적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비트 세대(Beat Generation)'를 중심으로 로큰롤이 대중음악의 중심이 되었고 싱글 레코드, 주크박스 등장, 청춘영화의 흥행, 흑인음악인 리듬앤 블루스 유입하는 등의 대중문화의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1. 로큰롤(Rock & Roll)

  틴팬엘리 스타일의 기성세대 음악이 컨트리와 블루스를 한데 어우르는 로큰롤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독립하고 청년세대는 이를 몸과 마음으로 이끌고 나갔습니다. 젊고 새로우며 반항적인 의미가 잇는 로큰롤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데요. 로큰롤의 초기 형태인 로커빌리(Rockabilly)는 컨트리 요소가 강한 블루스 스타일을 지칭합니다. 초기에는 피아노, 색소폰, 콘트라베이스를 사용하다가 전자악기의 발전과 더불어 일렉트릭 악기를 사용하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대규모 재즈 밴드보다는 소규모 밴드를 선호하면서 자연스럽게 로큰롤이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2.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로큰롤의 제왕이라고 불리운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는 1935년 미시시피 주에서 가난한 남부 백인 가정에서 태어나 15세 멤피스로 이사해 트럭 운전수로 일하다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1950년대 초반 미국의 레코드 제작사들이 흑인처럼 노래할 수 있는 백인 가수를 찾던 중 샘 필립스(Sam Phillops)에 의해 발굴되었습니다. 첫 히트곡 'Heartbreak Hotel'이후 1956년 한 해에만 넘버 원 히트 싱글 4곡을 기록하는 유래없는 성과를 보였습니다.

  군대 입대와 제대로 1960년대 음악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전의 빠른 템포의 곡에서 발라드로 스타일의 변화를 주었으며 스탠더드 팝이나 다른 가수들의 곡을 리메이크하기도하고 뛰어난 외모로 다수의 영화를 찍으면서 로큰롤에서 다소 멀어졌습니다. 1973년 세계 최초 36개국에 생중계된 하와이 콘서트로 다시 한번 히트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1977년 약물 남용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엘비스의 창법은 흑인음악을 훔친 백인 가수라는 비난을 불러일어켰지만,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절 흑인 음악인에게 긍정적인 면을 줬다는 의견도 공존하였습니다. 하지만 엘비스 프레슬리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외 18곡, 10위 38곡, 미국 내 1억 장과 전 세계 10억장 이상의 음반 판매를 기록했던 전세계인이 인정하는 로큰롤의 제왕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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